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별초의 난 (문단 편집) === 강화도 탈출 === [[1270년]] 5월 [[임유무]]의 살해('''경오정변''')로 [[무신정권]]이 무너지자 [[원종(고려)|원종]]은 그 즉시 [[개성시|개경]] 환도를 준비했다. 그러나 삼별초는 이에 반발하여 왕명을 따르지 않고 마음대로 부고를 징발했으며 여름 6월에 [[배중손]]과 [[노영희]] 등이 나라를 돕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격구장에 모이라고 했다가 모인 사람들이 달아나서 사방으로 흩어지자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시켰다. 강으로 돌아다니면서 군사들을 이끌고 [[강화도]]에서 반란을 일으켜 [[승화후]] 왕온을 강제로 협박해 왕으로 삼았다. 이 과정에서 원종에게 마중을 나간 백관들의 처자들 다수를 사로잡았고[* 그냥 인질이 아니라 젊은 여자들은 강제로 [[겁탈]]하여 자신들의 아내로 삼았다.] 강화도를 지키는 군사들이 많이 도망가서 육지로 나갔기에 강화도를 지키지 못할 것이라 여겨 재물과 자녀들을 모조리 실었다. 남쪽으로 내려간 삼별초가 이끄는 배는 1,000여 척이나 되었고, [[이숙진]]과 윤길보 등이 추격하자 부락산에서 군세를 과시해 도망가게 만들었으며 이어서 [[김방경]]과 송만호 등의 추격을 받아 [[영흥도]]에 정박했다가 도망치는 것에 성공했는데, 이때 삼별초로부터 남녀 1,000여 명이 도망갔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